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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클볼의 역사: 1965년 뒷마당에서 세계로

피클볼은 1965년 미국 워싱턴주 베인브리지 섬에서 조엘 프리처드, 빌 벨, 바니 매컬럼이 배드민턴 코트와 나무 패들, 구멍 뚫린 공으로 만든 가족 놀이에서 시작했습니다. 이름은 조정 경기의 '피클 보트'에서 왔다는 것이 가족의 설명이고, 1984년 미국 협회와 첫 규정집이 생기며 스포츠의 틀을 갖췄습니다. 2020년대 들어 미국 참여자가 2,000만 명을 넘고 프로 투어가 자리 잡았으며, 국내에는 2016년 무렵 본격적으로 소개되었습니다.

1965년 여름, 베인브리지 섬의 뒷마당

피클볼은 1965년 여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앞바다의 베인브리지 섬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워싱턴주 하원의원이던 조엘 프리처드(Joel Pritchard)와 사업가 빌 벨(Bill Bell)이 골프를 치고 프리처드의 여름 별장으로 돌아와 보니, 가족들이 할 일 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오래된 배드민턴 코트가 있었지만 라켓이 모자라 제대로 된 한 벌을 갖출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탁구 라켓과 구멍 뚫린 플라스틱 공을 들고 배드민턴 네트 너머로 공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배드민턴 높이인 약 152cm(60인치)에 네트를 걸고 공중에서만 주고받았는데, 아스팔트 바닥에서 공이 잘 튄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네트를 91cm(36인치) 안팎으로 내렸습니다. 이 무렵 이웃인 바니 매컬럼(Barney McCallum)이 합류했고, 세 사람은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규칙을 하나씩 만들어 갔습니다. 그래서 피클볼의 창시자로는 보통 이 세 사람을 꼽습니다.

그때 정한 네트 높이는 지금 규정에도 거의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아래 그림처럼 현재 네트는 양 끝이 91.44cm(36인치), 가운데가 86.36cm(34인치)입니다.

베이스라인 쪽에서 네트를 바라본 모습. 사이드라인 위치의 네트 높이 91.44cm(36인치), 가운데 높이 86.36cm(34인치)로 가운데가 5.08cm(2인치) 낮고, 네트 기둥은 사이드라인 바깥에 선다
네트 높이 — 사이드라인 91.44cm, 가운데 86.36cm

배드민턴 코트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코트 크기에도 흔적을 남겼습니다. 피클볼 코트 6.10×13.41m(20×44피트)는 배드민턴 복식 코트의 바깥 크기와 거의 같습니다. 코트 규격은 피클볼 코트 규격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이름의 유래: '피클 보트'인가, 강아지 '피클스'인가

피클볼이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설 내용 평가
피클 보트 설 프리처드의 아내 조안 프리처드가 "조정 경기의 피클 보트가 떠오른다"며 붙였다는 이야기. 피클 보트는 다른 배에 뽑히고 남은 선수들로 꾸린 배를 가리키는 말로, 여러 종목에서 조금씩 가져와 만든 이 놀이와 닮았다는 뜻 프리처드 가족이 일관되게 말해 온 설명
강아지 설 프리처드 가족의 코커스패니얼 '피클스'가 공을 물고 달아나서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 강아지는 게임이 이름을 얻은 지 몇 해 뒤에 태어났고, 오히려 게임 이름을 따서 강아지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 가족의 설명

강아지 이야기가 널리 퍼진 데에는 사정이 있습니다. 훗날 한 전국 매체 기자가 조엘 프리처드를 인터뷰하면서, 설명이 긴 '피클 보트' 이야기보다 귀엽고 기억하기 쉬운 강아지 이야기로 싣자고 했다고 합니다. USA Pickleball도 강아지가 1968년생이라며 피클 보트 쪽을 정설로 봅니다. 그래도 강아지 이야기가 워낙 재미있어 지금도 두 설이 함께 소개되곤 합니다.

뒷마당 놀이가 스포츠가 되기까지

가족 놀이였던 피클볼은 1970년대에 걸쳐 조금씩 밖으로 퍼졌습니다.

  • 1967년: 첫 영구 피클볼 코트가 만들어졌습니다.
  • 1972년: 새로 만든 이 경기를 보호하기 위해 법인이 세워졌습니다.
  • 1975년: 미국 전국 주간지에 피클볼 기사가 실렸습니다.
  • 1976년: 봄에 워싱턴주 터퀼라의 한 체육 클럽에서 처음으로 알려진 피클볼 대회가 열렸습니다. 참가자 상당수는 피클볼을 거의 모르던 대학 테니스 선수들이었다고 합니다. 같은 해 한 테니스 잡지는 피클볼을 "미국의 최신 라켓 스포츠"라고 소개했습니다.

이 시기 피클볼은 주로 미국 서북부 지역에서 체육 교사와 동네 모임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전국 단위의 조직과 통일된 규칙은 아직 없었습니다.

협회 결성과 규칙의 정비

1984년, 미국 아마추어 피클볼 협회(USAPA)가 결성되어 전국 단위의 보급과 발전을 맡았고, 같은 해 3월 첫 공식 규정집을 펴냈습니다. 지금 이름인 USA Pickleball이 바로 이 단체이며, 규정집은 이후 거의 해마다 개정되고 있습니다. 같은 해 유리섬유 면과 허니콤 코어를 쓴 첫 복합 소재 패들이 나와 나무 패들 시대가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에는 미국 50개 주 모두에서 피클볼을 치게 되었고, 2005년에는 협회가 비영리 법인으로 새로 조직되었습니다. 2009년 애리조나에서 열린 첫 전국 대회에는 400명 가까운 선수가 참가했습니다.

규칙도 경기와 함께 변해 왔습니다. 2020년대에 들어 달라진 굵직한 규칙만 추려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기 변화
2021년 서브가 네트에 맞고 들어가면 다시 넣던 렛 서브 규정이 사라지고, 네트에 맞아도 제대로 떨어지면 그대로 경기 진행. 드롭 서브가 임시 규정으로 도입
2022년 드롭 서브가 정식 규정으로 확정
2025년 모든 랠리에 점수가 나는 랠리 스코어링이 임시 규정(선택 방식)으로 들어옴
2026년 랠리 스코어링에서 마지막 점수도 서브와 상관없이 인정. 발리 서브의 세 조건에 '분명하게'라는 기준이 붙고, 휠체어 경기와 서서 하는 장애인 경기 규정이 따로 한 절로 정리됨

서브 규칙의 현재 모습은 서브 규칙에서, 랠리 스코어링은 랠리 스코어링이란?에서 설명합니다.

폭발적 성장과 프로 시대

2010년대까지 피클볼은 주로 은퇴자 단지와 레크리에이션 센터의 운동으로 알려졌습니다. 흐름이 크게 바뀐 것은 2020년 전후입니다. 야외에서 적은 인원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을 찾는 사람이 늘었고, 비어 있던 테니스 코트에 피클볼 라인이 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 미국 스포츠·피트니스 산업 협회 조사 기준 참여자는 2020년 약 420만 명에서 2025년 약 2,430만 명으로 늘었고, 5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종목으로 꼽혔습니다.
  • USA Pickleball 회원은 2025년 10만 명을 넘었습니다.
  • 2022년 워싱턴주는 피클볼을 주(州) 공식 스포츠로 지정했습니다.

프로 무대도 이 시기에 생겼습니다. 2019년 개인 투어인 PPA 투어와 APP 투어가 출범했고, 2021년에는 팀 리그인 메이저리그 피클볼(MLP)이 시작됐습니다. PPA 투어와 MLP는 2024년 2월 합병을 마무리해 하나의 조직 아래 운영되고 있습니다. 투어와 리그의 구조는 프로 피클볼 투어 알아보기에서 다룹니다.

세계로, 그리고 한국으로

피클볼은 캐나다와 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로 퍼져 나갔습니다. 국제 단체가 여럿 생겨 한동안 나뉘어 있었고, 이들을 하나로 묶으려는 작업이 이어져 왔습니다. 올림픽 종목이 되려면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인정하는 단일 국제연맹이 먼저 있어야 해서, 단체 통합이 올림픽으로 가는 첫 관문으로 꼽힙니다. 피클볼은 아직 올림픽 종목이 아닙니다.

국내에는 2016년 무렵 한 대학의 피클볼 클럽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소개되었고, 이후 지역 클럽이 하나둘 생겼습니다. 2018년에는 전국 단위 협회가 창립되어 국제 단체에 가입했고, 지금은 여러 협회와 연맹이 지도자 교육과 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실내 체육관을 대관하는 동호회로 시작해 지자체의 실외 전용 코트로 저변이 넓어지고 있으며, 서울 광나루한강공원에는 2026년 4월 전용 코트 14면이 문을 열었습니다. 세계와 국내의 현재 흐름은 세계와 한국의 피클볼에 따로 정리했습니다.

연표로 보는 피클볼

연도 일
1965 베인브리지 섬에서 프리처드·벨·매컬럼이 경기를 만들고 이름을 붙임
1967 첫 영구 코트
1972 경기를 보호하기 위한 법인 설립
1976 처음으로 알려진 대회(워싱턴주 터퀼라)
1984 미국 협회 결성, 첫 공식 규정집, 첫 복합 소재 패들
1990 미국 50개 주 전역에서 경기
2019~2021 프로 투어(PPA·APP)와 팀 리그(MLP) 출범
2022 워싱턴주 공식 스포츠 지정
2024 PPA 투어와 MLP 합병
2025 미국 참여자 약 2,430만 명

뒷마당에서 아이들과 놀던 경기가 한 세대 만에 이만큼 커졌지만, 경기의 뼈대는 1965년 여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작은 코트, 낮은 네트, 언더핸드 서브, 그리고 나이와 실력이 달라도 함께 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피클볼이 어떤 운동인지 처음부터 알고 싶다면 피클볼이란?부터 읽어 보세요.

자주 묻는 질문

피클볼은 누가, 언제 만들었나요?

1965년 여름 미국 워싱턴주 베인브리지 섬에서 조엘 프리처드, 빌 벨, 바니 매컬럼 세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할 일 없이 지루해하던 가족들과 함께 놀려고 배드민턴 코트에서 나무 패들과 구멍 뚫린 플라스틱 공으로 치기 시작한 것이 출발입니다.

피클볼이라는 이름은 강아지 이름에서 온 건가요?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프리처드 가족의 설명은 다릅니다. 조안 프리처드가 조정 경기에서 남은 선수들로 꾸린 '피클 보트'를 떠올려 이름을 붙였고, 강아지 피클스는 몇 해 뒤인 1968년에 태어나 오히려 게임 이름을 따서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첫 피클볼 대회는 언제 열렸나요?

처음으로 알려진 대회는 1976년 미국 워싱턴주 터퀼라의 한 체육 클럽에서 열렸습니다. 전국 단위 협회와 첫 공식 규정집은 그보다 뒤인 1984년에 생겼습니다.

피클볼은 올림픽 종목인가요?

아직 올림픽 종목이 아닙니다. 올림픽 종목이 되려면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인정하는 단일 국제연맹이 있어야 해서, 여러 국제 단체가 하나로 합치는 작업을 첫 단계로 진행해 왔습니다.

한국에는 피클볼이 언제 들어왔나요?

2016년 무렵 대학 피클볼 클럽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소개되었고, 2018년 전국 단위 협회가 창립되었습니다. 이후 지역 클럽과 대회가 늘었고, 실내 체육관 중심에서 지자체 실외 전용 코트로 저변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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